이억기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억기(李億祺, 1561년 ∼ 1597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武臣)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수(景受), 시호는 의민(毅愍)이다. 선조의 종친이다.
[편집] 생애
어렸을 때부터 무예가 뛰어났으며 17세 때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경흥부사(慶興府使) 등 국방상의 요직을 역임하여 북방의 여진족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무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1591년 임진왜란 때는 전라우도수군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가 되어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원균과 연합함대를 구성한 뒤 조선 수군의 기동타격군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일본 함대와의 여러 해전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조선 정부와 원균의 무리한 공격 명령을 받고 휘하의 함대를 이끌고 일본군을 공격하다가 칠천량 해전에서 패하여 전사하였다.
[편집] 사후(死後) 관작(官爵)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이 되어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고 완흥군(完興君)으로 추봉되었다. 의민(毅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의민공(毅愍公)이 되었다.
이 문서는 군인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