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 4도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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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4도 분쟁(Kuril Islands dispute)은 쿠릴 열도의 남쪽 4개 섬에 대해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있는 영토 분쟁을 말한다.
홋카이도의 네무로 반도의 앞바다에 있는 섬들은 태평양 전쟁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에 귀속되어 있으며, 전후 일본이 러시아에 반환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현재 일본인이 쿠나시르 섬에 비자 없이 들어가는 것을 러시아측에 일부 인정하고 있다.
일본 우익 관료들은 네 개 섬과 함께 쿠릴 열도와 남사할린 섬(때로는, 사할린 섬 전체)도 '북방 영토'에 포함되어, 이것이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선주민족중 하나인 아이누족이 원래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아이누민족 독립운동과는 무관하게 분쟁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강제징용으로 이주당한 상당수의 재사할린한국인들이 현재 거주하고 있어, 단순히 러일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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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남쿠릴 4개섬
- 이투루프 섬(Итуруп, 일본어: 擇捉島, 에토로후 섬)
- 쿠나시르 섬(Кунашир, 일본어: 国後島, 구나시리 섬)
- 시코탄 섬(Шикотан, 일본어: 色丹島, 시코탄 섬)
- 하보마이 열도(Хабомай, 일본어: 歯舞群島, 하보마이 섬)
[편집] 러시아에서의 남쿠릴 4개섬
1945년부터 이지역은 러시아의 영토로 들어갔다. 일본에서는 4개 섬을 모두 돌려달라고 하나 러시아는 2개의 작은 섬만 돌려준다고 했었다. 현재는 모든 반환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편집] 일본의 반환 요구에 대한 러시아의 주장
-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참전이나 전후의 쿠릴 열도 할양은 연합국에 의해 사전에 승낙되었다.
- 파기의 전달이 늦은 것은 전달이 심야였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감지가 늦었을 뿐이다.
- 도쿄 재판 확정 판결은, 일소 중립 조약이 성의 없게 연결된 것이고 소련에 대한 일본의 침략적인 기도를 진행시키는 수단으로서 연결된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1]
- 1945년에 북방 영토 경비의 임무를 받고 있던 나카가와 중장, 이와타 중위가 주고 받은 쿠릴 열도의 잠정적 이양의 합의 밀약 「쿠나시리 밀약」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다. (1960년에 러시아측에서 판명되었지만, 일본은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대해 일본은 쿠릴 열도를 방폐하고 있다.시코탄·하보마이 열도라면 쿠릴 열도가 아니고 홋카이도의 부속섬이라고 해석하므로 반환해도 좋다.
- 쿠릴 열도의 범위가 쿠나시르 섬까지라고 하는 근거는, 일본쪽 사전에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 섬를 쿠릴 남부로 포함하고 있으므로 분명한 것이다.
[편집] 일본의 주장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북방영토라고 하며, 1945년에 빼앗긴 이 지역을 돌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편집] 일본쪽 반환 요구의 근거
[편집] 영토 문제
쿠릴 열도의 범위가 최대의 쟁점이 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의 반환 후에는 일본우익에 의해 남사할린의 반환요구 또한 더욱 거세어 질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편집] 관계사
일본은 러시아보다 빨리 북방 영토의 통치를 실시해, 러시아는 이투루프 섬보다 남쪽을 지배한 것은 태평양 전쟁 이전에는 한번도 없었다.
- 1855년
- 일본과 러시아는 완전히 평화적으로 러일화친조약(시모다조약)을 맺어, 당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던 이투루프 섬과 우루프 섬의 사이를 국경선으로 했다.
- (1904년-1905년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 사할린 섬 남쪽이 일본령에 포함됨.)
- (1914년-1918년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함)
- (1931년 만주 사변발발)
- (1937년 중일 전쟁발발)
- (1941년 일·미 개전)
- 1943년
- 태평양 전쟁 중 미·영·중이 카이로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1914년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이 여러 나라에서 탈취한 영토를 탈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카이로 선언). 그 때문에 남부 사할린 섬이나 쿠릴 열도는 미·영·중의 탈환의 대상은 되지 않았다.
- 1945년 8월~9월
- 8월 8일, 소련이 러일 중립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대일 참전을 시작했다. 8월 10일, 일본이 미·영·중·소의 공동선언(포츠담 선언)의 수락을 연합국에 전달하고 9월 2일, 일본은 연합국에의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 8월 28일부터 9월 5일까지의 사이에 캄차카 반도방면에서 쿠릴 열도에 진입해 북방 쿠릴 열도까지 모든 섬들을 점령했다.
- 포츠담 선언은 카이로 선언을 답습한 선언이여서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및 시코쿠까지이다. 미, 영, 중, 소가 결정하는 권한은 이들 섬만에 국한되었다.
- 1956년
- 러일 공동 선언으로 외교 관계가 회복되었다. 공동선언의 제9항으로, 소련이 하보마이제도·시코탄 양 섬을 평화 조약 체결 후에 일본에 반환하는 것에 동의했다.
- 1960년
- 기시 노부스케내각이 미일 안전 보장 조약개정을 실시한 일에 대해서 소련은 거센 반발을 했다. 소련은 하보마이제도와 시코탄섬의 반환은 「양국간의 우호 관계에 근거한, 본래 소련령인 동지역의 인도」라고 주장해, 반환의 동의를 철회했다.
- (1991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해체되고, 러시아가 독립해 영토 문제를 계승했다)
[편집] 해설
[편집] 영토 문제의 교섭 과정
[편집] 관련 항목
[편집] 바깥 고리
- 뉴스 블로그 (독일어, 영어)
- 러시아와 일본의 국경변동 역사를 나타내는 지도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영어) - 동해가 일본해로 표시되어 있음
- 게임 '배틀필드2'의 남쿠릴4도 분쟁에 관한 MOD(Kuril Islands Conflict mod)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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