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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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燃獄, 라틴어: purgatorium)은 로마 가톨릭의 내세관 중 하나이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의인들의 영혼이 있는 천국과 악인들의 영혼이 있는 지옥 사이에는, 죽은 후 지옥에 갈 정도의 대죄(大罪)는 없지만, 천국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착하지 않은 영혼이 그 소죄(小罪)를 속죄하기 위해 천국에 대한 희망을 갖고 얼마동안 단련하기 위해 머무는 장소 내지 과정이 있다고 믿는데, 이를 연옥(燃獄)이라고 한다. 정죄계(淨罪界)라고도 한다. 연옥설은 지금까지 로마 가톨릭 종말론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편집] 개념
로마 가톨릭의 통속직 이해에 따르면, 인간이 죽은 다음 육체에서 벗어난 영혼이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에 깨끗한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대죄 중에서 하느님에게 등을 진 영혼은 지옥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 중간 지역에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이라고 하는, 그 죄에 해당하는 보속을 완전히 치르고 천국에 가기 위해 단련을 받는 일시적인 상태 및 체류지가 있다고 본다. 연옥의 위치와 연옥에서의 고통과 정화 과정은 죄와 정비례하여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장소와 시간적 길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신적 신비에 속한다.
연옥의 단련은 ‘정화의 불(Fegefeuer)’에 타는 고통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 개념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3장 15절의 “깨끗하게 하는 불(ignis purgatorius)”에서 유래한다. 영혼들이 연옥의 불 속에서 참회하며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정화된다는 것이다. 이 불이 과연 물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것인지, 그 의미는 분명하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정화의 불을 물질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감옥살이하는 범죄자들과 같아서 스스로는 그 보속을 경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승에 있는 사람들이 연옥의 영혼들을 위해 바치는 기도를 통해서, 무엇보다 먼저 헌금 등 하느님이 기뻐하는 제단의 제물을 통하여 그들의 보속은 경감이 될 수 있다. 즉, 정화의 과정이 빨리 끝나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로 지정해 죽은 자들을 위한 위령 미사를 위시해서 하느님에게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성인들의 통공’에 대한 확고한 교리에 근거한 것이다. 즉, 이승에 있는 ‘지상 교회’의 신자들, 천국에서 보상받고 있는 ‘천상 교회’의 신자들, 그리고 연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연옥 교회’의 신자들은 자신들의 선공을 다른 지체들과 공유함으로써 서로에게 구원을 위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성서에는 구체적인 기술은 없지만 마태오 복음서 12장 32절에서의 내세에서도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암시 및 마카베오 하권 12장 43절에서 죄를 범하고 죽은 자들을 위해서 기도한 일을 근거로 하고 있다.
연옥에 대한 개념은 연옥이 로마 가톨릭의 공적 교리로 확정되기 이전, 초대 교회의 교부들의 진술에서도 발견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은 이를 돌봄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아직 내세의 정화를 필요로 하는 죽은 이들을 위한 신도들의 기도와 순교자들의 중재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영혼이 부활하기 위하여 그 죄에 대한 대가를 한 푼도 남김없이 치루어야 할 교도소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다. 키프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은 죽는 즉시 궁극적 구원을 얻지만, 박해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부인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기를 원하였던 사람들은 죽은 후에 정화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진술들이 과연 연옥을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죽은 후에 영혼이 정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연옥설은 1336년 교황 베네딕토 12세의 교서를 통하여 로마 가톨릭의 공식 교리가 되었다. 이 교서에서 교황은 마지막 부활이 있을 때까지 죽은 자들이 잠자는 상태에 있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이론을 거부하고, 죽은 자들은 죽음과 동시에 심판을 받는다고 적고 있다.
한편, 개신교에서는 연옥의 개념을 부정하고 배척하고 있다. 연옥은 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비(非)성경적인 주장으로 여기고 있으며, 가톨릭에서 저승을 천국과 연옥 그리고 지옥으로 구분하는 반면, 개신교에서는 저승을 오직 천국과 지옥으로 나눈다. 그래서 죽은 후의 구원 가능성이나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종교개혁가들은 죽은 자들과의 영적 교류를 부인하였다. 성공회의 경우는 연옥을 비(非)성서적인 것으로 보아 인정하지 않지만, 루카 복음서에 근거한 음간의 존재를 믿으며, 영혼불멸설에 근거한 별세자를 위한 기도와 별세 미사를 통해 별세자의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동방정교회에서도 로마 가톨릭이 주장하는 연옥 교리를 부정한다. 다만 죽은 영혼이 잠시 고통받는 중간 기간이 있다고는 믿으며, 로마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예식(파니히다)을 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