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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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成宗, 960년 - 997년)은 고려의 제6대 왕(재위: 981년 - 997년)이다. 휘는 치(治), 자는 온고(溫古), 시호는 성종강위장헌광효문의대왕(成宗康威章憲廣孝文懿大王). 태조의 손자이고, 대종(戴宗)과 선의태후(宣義太后) 유씨(柳氏)의 아들이다.
[편집] 생애
960년 태조의 4번째 아내 신정왕후의 소생 왕욱과 태조의 6번째 아내 정덕왕후의 소생 선의왕후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981년 7월 죽음이 임박해진 경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이때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성종은 어머니 선의왕후가 일찍 승하하여 할머니 신정왕후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인품이 뛰어나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광종 이후 형성된 유교적 분위기에서 자라난 그가 집권하면서 고려는 유교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대대적인 체제 정비 작업에 돌입한다. 충효 사상을 강조하고 계급 질서 확립에 주력함으로써 귀족과 평민, 천민의 구분이 명확해진다. 이 같은 유교 정치는 중앙집권적 체제를 완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또한 982년 6월에 체제를 정비하고 정치 이념을 명확히 할 목적으로 5품 이상의 모든 관리들에게 상소문을 올리게 하였다. 이때 최승로의 《시무 28조》가 채택되어 정치 방향과 체제 정비를 위한 기본적인 골격이 형성되었으며, 990년 김심언이 올린 육정육사에 관한 상소을 통해 올바른 신하상이 확립되었다.
중앙집권체제 확립과 유교사회 건설을 정치 이념으로 내세운 성종은 983년 2월 최승로를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임명한 후 본격적인 체제 정비 작업에 돌입한다. 3성 6부제를 도입하여 중앙 관제의 기강을 확립하고, 10도 12목 설치로 지방 조직 정비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각 지방에 유학 교육 기관을 세워 백성들의 사상적 통합을 꾀하게 된다.
성종의 유교 정책은 결과적으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형태를 띠게 되어 연등회와 팔관회 등의 불교행사들이 폐지되고, 사회 전반에 유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고려가 내부적으로 이 같은 문화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동안 외부적으로는 외세의 군사적 위협이 커져가고 있었다. 요나라는 체제 정비를 완료하고 고려를 압박하면서 과거의 고구려의 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요나라는 발해를 몰락시킨 후 당연히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신라의 뒤를 이은 고려가 이러한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침략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요나라의 엄포가 있자 고려는 의논 끝에 요나라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결정하고, 요나라에게 고려는 신라가 아닌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에 요나라는 993년 10월 소손녕을 대장군으로 삼아 고려를 침략한다.
요나라군이 침입하자 성종은 시중(侍中) 박양유를 상군사, 서희를 중군사(中軍使), 최량을 하군사(下軍使)에 임명하고 친히 군대를 이끌고 서경에 진을 쳤다. 하지만 봉산군이 함락되어 많은 고려인들이 포로로 붙잡히자 서희는 군대를 이끌고 봉산을 향해 북진했다. 이에 소손녕이 항복을 권유하는 서한을 보내자 서희는 오히려 그와 담판을 짓고 압록강 동쪽의 6주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해서 고려의 영토는 압록강변까지 확대되고 고려와 요나라 사이에 있던 여진족 세력은 더욱 위축된다.
이 사건 이후 고려는 송나라와 요나라를 사이에 두고 군사적 외교를 펼치는 실리주의 전략을 구사한다.
이처럼 성종은 행정조직 정비를 통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유교를 정착시켜 교육제도의 변혁을 꾀했으며, 사회 전반에 충효사상을 심어 정신적 기반을 다졌다. 또한 요나라와의 외교적 성과로 강동 6주를 얻어 영토를 확장했고, 991년 4월에 송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갔던 한언공이 대장경을 들여와 불경 사업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22살에 왕위에 올라 16년 동안 고려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성종은 997년 병을 얻고 말았다. 그리고 그 해 10월 증세가 위독해지자 경종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개령군(開寧君)을 불러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때 평장사(平章事) 왕융이 성종의 건강 회복을 위하여 대사령을 내리자고 하였으나 성종은 “사람의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어찌 죄인들을 용서함으로써 억지로 연명을 구할 수 있겠는가”라며 거절하였다.
997년 10월에 성종은 재위 16년 3개월 만에 38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능호는 강릉(康陵)이다.
[편집] 가족 관계
- 문덕왕후 유씨(文德王后)
- 문화왕후 김씨(文和王后)
- 원정왕후(元貞王后)
- 낙랑군대부인 최씨(樂浪郡大夫人, 연창궁부인)
- 원화왕후(元和王后)
전 임 경종 |
제6대 고려왕 981년 - 997년 |
후 임 목종 |
고려의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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