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선 세종 | |
---|---|
![]() |
|
재 위 | |
1418년 ~ 1450년 | |
왕 비 | 소헌왕후 |
황 후 | {{{황후}}} |
왕 후 | {{{왕후}}} |
부 군 | {{{부군}}} |
앞선 왕 | 태종 |
앞선 황제 | {{{이전 황제}}} |
다음 왕 | 문종 |
다음 황제 | {{{다음 황제}}} |
조선의 제4대 국왕 |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년 음력 4월 10일/양력 5월 6일 - 1450년 음력 4월 8일/양력 5월 18일, 재위 1418년 - 1450년)은 조선의 제4대 임금이다. 휘는 도(祹), 자는 원정(元正), 시호는 세종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이다.
세종대왕은 재위기간 동안 국방과 과학 및 경제,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찬란한 업적을 많이 남겨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화폐 10000원권의 인물이기도 하다.
목차 |
[편집] 생애
[편집] 즉위 이전
세종대왕은 1397년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408년 12살에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졌고, 1413년 16살에 충녕대군(忠寧大君)이 되었다. 그 후 1418년에 양녕대군이 왕세자에서 폐위되자 22살에 충녕대군의 학문과 높이 평가되여 일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종에 의해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8월에 조선의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편집] 재위 기간
세종은 즉위 후 아버지 태종이 이룩해 놓은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내세우고 수준 높은 이상적인 유교적 민본 사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먼저 황희, 맹사성 등과 같은 유능한 인재들을 많이 등용하여 정치를 맡겨 깨끗하고 참신한 정치를 펼쳐 나갔다. 그러면서도 인사와 군사에 관한 일은 세종 자신이 직접 처리함으로써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루었다. 아울러 국가의 행사를 오례에 따라 유교식으로 거행하였으며, 사대부들에게도 주자가례의 시행을 장려하여 유교 윤리가 사회 윤리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세종은 학문적입 사업뿐만 아니라 국토 개척과 확장을 통하여 국력을 신장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였다. 1419년 6월 19일 이종무 장군으로 하여금 삼도에 소속된 9명의 절제사들과 전함 227척, 군사 1만 7천 명을 이끌고 거제도의 마산포를 떠나 왜구의 근거지인 일본의 대마도를 정벌하게 하였다. 대마도에 상륙한 조선군은 섬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왜구들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다. 그렇게 보름쯤이 지나자 대마도의 도주가 항복을 하였다. 이때 이종무는 왜구에게 잡혀갔던 조선인과 함께 붙잡혀 있던 명나라인도 구출했다. 조선군은 대마도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군대를 철수시켜 1420년 대마도를 경상도에 편입시킨다고 대마도 도주에게 통고했다. 그 대신 조선과의 무역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왜구를 너그럽게 포용함으로써 노략질을 근본적으로 방지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같은 정책으로 오랫동안 왜구의 침입이 없어졌다.
1420년 중앙 집권 체제를 운영하기 위해 정책 연구 기관으로 궁중 안에 집현전을 설치하여 그들을 일반 관리들보다 우대하였다.
1443년에는 북방 이민족인 여진족에 대한 강경책과 영토 확장에 대한 일환으로 최윤덕 장군과 김종서 장군으로 하여금 여진족을 토벌하여 평안도의 4군(四郡)과 함경도의 6진(六鎭)을 개척하게 하였다. 이로써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급속히 축소되었던 영토가 두만강 및 압록강 유역으로 확대되었다.
1443년 조선에 고유 문자가 없음을 개탄한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1446년 9월에 이를 반포하였다. 훈민정음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으며, 자기의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자를 만드는 원리가 매우 과학적인 뛰어난 문자이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보급시키기 위하여 여러 책들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거나 편찬하였다. 그리고 행정실무에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 채용에 훈민정음을 시험으로 치르게 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한민족은 고유한 문자를 가지게 됨으로써 일반 백성들도 문자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며, 문화 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또 세종은 장영실에게 명하여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와 천체 관측 기계인 혼천의, 해시계인 앙부일구와 물시계인 자격루 등 백성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과학 기구를 발명하게 하였다.
[편집] 말년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 세종은 무리하게 국정을 돌본 탓에 집권 후반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어 병석에 누워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1450년 4월 8일 54살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능은 영릉(英陵)이다.
[편집] 가족 관계
1부인 | 2부인 | 3부인 | 4부인 | 5부인 | 6부인 | 7부인 | 8부인 | 9부인 |
---|---|---|---|---|---|---|---|---|
소헌왕후 심씨 (昭憲王后) |
영빈 강씨 (令嬪) |
신빈 김씨 (愼嬪) |
혜빈 양씨 (惠嬪) |
숙원 이씨 |
상침 송씨 |
장의궁주 박씨 |
의정궁주 조씨 |
혜순궁주 이씨 |
문종 수양대군 : 세조 |
화의군 |
계양군 의창군 |
한남군 수춘군 |
정안옹주 |
정현옹주 |
[편집] 세종의 이름이 붙은 것
- 세종과학기지는 남극 킹조지 섬에 있는 과학 기지이다.
- 세종대왕상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문해율 증진을 위해 힘쓴 사람이나 단체에게 주는 상이다.
- 세종로(世宗路)는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도로로, 세종로 사거리를 기점으로 하여 교보타워, 세종문화회관, 정부중앙청사를 지나 광화문 앞까지 이르는 도로이자 법정동의 명칭이다.
- 세종 솔로이스츠는 문화단체로 줄리어드 음대에 재직하고 있는 강 효 교수의 책임하에 운영되고 있는 앙상블 단체이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바깥 고리
- 세종대왕 기념관 (사단법인: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 세종대왕 탄신 600돌 기념
- 디지털 한글박물관
- 한글재단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국왕 |
---|
조선: 태조 | 정종 | 태종 | 세종 | 문종 | 단종 | 세조 | 예종 | 성종 | 연산군 | 중종 | 인종 | 명종 선조 | 광해군 | 인조 | 효종 | 현종 | 숙종 | 경종 | 영조 | 정조 | 순조 | 헌종 | 철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