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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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忠烈王, 1236년 - 1308년)은 고려의 제25대 왕(재위: 1274년 - 1308년)이다. 휘는 거, 시호는 충렬경효대왕(忠烈景孝大王). 원종과 순경태후(順敬太后) 김씨(金氏)의 아들이다.
[편집] 생애
충렬왕은 원종과 정순왕후 사이의 맏아들로 1236년 2월에 태어났다. 그는 1267년 왕태자로 책봉되었으며 1272년 원나라로 갔다. 1274년에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딸 홀도로게리미실 공주와 결혼했으며, 1274년 6월 원종이 세상을 떠나자 고려로 돌아와 왕이 되었다.
충렬왕은 원나라를 철저하게 따랐으며 원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 열도 정벌 전쟁을 도왔다. 태풍으로 일본 정복은 실패했으나,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어 관청과 관직 이름뿐만 아니라 고려 왕실의 호칭도 격하되었다. 몽골 풍속은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에 1281년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써서 민족성을 되살리려고 했지만 충렬왕은 몽골식 생활과 사냥에 빠져 나랏일을 돌보지 않았다. 충렬왕이 아끼던 궁녀 무비의 횡포도 나날이 심해졌다. 이 때문에 충렬왕은 제국대장공주와 왕세자의 반발을 샀다.
충렬왕과 왕세자 원 사이의 갈등은 이후 더욱 심해져 1296년 7월 왕세자 원이 궁녀 무비와 충렬왕의 추종자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 버리게 된다.
이를 원나라가 지지하자 충렬왕은 스스로 왕위를 내놓았고 왕세자 원이 1298년 1월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충선왕이다. 하지만 충선왕은 고려의 옛 제도를 되살리는 등 자주적 정치를 펼치려다가 원나라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고 다시 충렬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후 충렬왕은 자신의 아들인 충선왕을 없애기 위해 직접 원나라에 머무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비참하게 고려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듬해인 1308년 7월 73살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능호는 경릉이다.
[편집] 가족 관계
-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
- 정화궁주(貞和宮主) 왕씨
- 강양공(江陽公)
- 정녕원비(靜寧院妃)
- 명순원비(明順院妃)
- 숙창원비 김씨(淑昌院妃)
전 임 원종 |
제25대 고려왕 1274년 - 1308년 |
후 임 충선왕 |
고려의 역대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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