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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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張飛, 167년 ~ 221년)는 중국 삼국시대의 맹장으로 촉한의 건국 공신이다. 자는 익덕(益德)이다.
유비, 관우와 함께 황건적 토벌에 나서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장판교에서 조조의 대군을 막았으며, 서촉 정벌시, 엄안을 회유하여 파촉 정벌의 큰 공로를 세웠다. 이후 파서 태수 자리에 올랐고 한중 정벌에서 위나라의 장합과 맞서 싸워 승리하였다. 그러나, 관우의 복수를 위해 출정하는 도중 범강과 장달에게 암살되었다.
무기로 장팔사모(丈八蛇矛, 팔 척짜리 사모)를 썼다고 하는데, 창두가 뱀처럼 구불구불했고 길이가 1장 8척(3m 60cm)이었다 한다. 사모(蛇矛)가 처음 등장한 때가 동진(東晉) 이후이므로 장팔사모 역시 실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또한 터무니 없는 길이를 볼 때 당시 사람들의 과장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장남 장포는 요절했고, 차남 장소가 가계를 이었다. 장비의 딸은 황후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포가 촉한을 위해 활약하고, 전쟁 중 입은 부상으로 사망한다.
[편집] 생애
연의를 보면 장비는 본래 술과 고기를 파는 상인이었는데, 황건적의 난에 대한 지원병 모집 방문을 보고 한숨을 쉬던 유비와 함께 주막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곳에 관우가 나타나 의기투합하여 도원결의를 맺게 된다.
장비는 용맹하고 과격한 성격으로, 황건적 토벌에서 부장 등무를 토벌하는데, 유비의 스승 노식이 환관의 참언으로 죄를 뒤집어쓰고 호송되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호송병을 죽이고 노식을 구하려고 했지만 유비에게 제지당한다. 또한 황건적의 수령 장각에게 패한 동탁을 구해주지만 유비를 경멸하자 장비는 이에 분노해 동탁을 살해하려고 했다. 이때도 유비가 그를 제지했다. 마침내 황건적 토벌의 공로로 유비는 안희현의 현위에 임명되지만, 순시하러 온 독우가 뇌물을 요구하며 횡포를 부리자 장비가 분노하여 독우를 기둥에 묶고 매질을 하였다. 유비는 장비를 제지하고 현위를 사직하고 도망가게 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그 후 동탁과의 싸움에서 장비는 여포에게 도전했다가 패한 공손찬을 돕고, 여포와 단기필마로 싸운다. 관우와 유비까지 가세하자 여포는 패주한다. 그 후에는 유비와 함께 공손찬, 공융, 도겸 밑을 떠돌면서 그들을 군사 면에서 돕는다. 정사에서는 공손찬이 동탁과의 싸움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그 객장이었던 유비와 관우, 장비도 동탁과의 싸움에는 나서지 않았다. 여포와의 대결은 관우와 장비의 무용을 보여주기 위한 허구이다.
이윽고 도겸이 죽자 유비가 잠시 서주를 맡게 되고, 조조에게 패한 여포가 유비를 찾아와 의지하려 들었다. 장비는 여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에게 결투를 신정했지만 유비가 이를 말리고 관우가 장비를 데리고 나갔다. 또한 조조의 군사 순욱이 내건 ‘두 호랑이가 서로 먹이를 다투게 하는 계략’으로 황제로부터 여포 토벌의 밀칙을 받자 유비는 이 계략을 간파하고 장비를 제지했다.
이번에는 순욱에게 ‘호랑이를 몰아내고 이리를 잡는 계략’에 걸려 유비는 원술 토벌의 조칙을 받는다. 유비가 출정하고, 장비는 금주 서약을 하고 서주를 지키는데, 그래도 술을 끊을 수 없어 조표에게 술을 강요하며 매질했기 때문에 조표의 원한을 산다. 이에 조표는 밤중에 여포를 불러들였다. 장비는 조표를 죽이지만 유비의 처자를 구하지 못한 채 혼자 달아났다. 장비는 책임을 지고 자살하려고 했지만 유비가 제지하자 흐느끼면서 포기한다. 그 후 유비와 여포는 화해하지만 장비가 산적으로 변장해 여포의 군마를 탈취하자 분노한 여포에게 공격당한다. 유비 일행은 조조에게 몸을 의지하고 조조와 공동으로 여포를 격퇴하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원술을 토벌할 때 관우가 단기필마로 싸워 애먹었던 기령을 토벌한다. 그 후 유비가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조조가 파견한 유대와 왕충과 대치한다. 장비는 일부러 술에 취해 한 병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그 병사를 유대에게 투항하게 만들어 장비가 야습한다는 사실을 밀고시킨다. 유대는 진지를 비우고 복병을 준비하지만 장비가 의표를 찔러 바깥쪽에서 공격, 유대를 생포했다.
그러나 조조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오자 유비는 패배하여 관우, 장비와 생이별을 하게 된다. 장비는 망탕산에서 무사히 탈출해 고성현령을 쫓아내고 그 곳에 독자 세력을 구축해 눌러앉았다. 이윽고 조조 밑을 떠난 관우가 만나러오자 장비는 배신자라고 말하며 관우에게 덤벼들었다. 관우는 자기를 추격해온 채양을 토벌한 것으로, 겨우 장비를 납득시켰다. 그후 형주의 유표 밑에서 몸을 의지할 때 유비가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만나게 되는데, 동행한 장비는 제갈량이 낮잠을 자고 있는 것에 화가 나 집에 불을 지르려고까지 했다.
유표가 죽은 후 조조가 형주를 침공해오자 유비는 강남으로 도망쳤는데, 조조는 이를 추격해 당양의 장판에서 따라잡았다. 유비는 장비에게 20기병을 지휘해 배후를 막아내도록 했다. 장비는 강을 앞에 두고 다리를 끓고,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장팔사모를 치켜들며 “내가 바로 장비이다! 덤벼라! 목숨이 아깝거든 물러나라!”하고 호령했다. 감히 누구도 접근하지 못해 유비는 무사히 도망갈 수 있었다. 이는 경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판교의 금강역사’라는 유명한 장면인데, 삼국지연의에서는 다리 위에서 장비가 말 위에 홀로 우뚝 버티고 서서 조조군을 퇴각시킨다.
그 후 적벽 전투의 승리를 거쳐 유비가 강남을 평정하자, 장비는 의도태수 정로장군에 임명되고 이후 남군태수로 전임되었다. 유비가 장로 토벌을 위해 익주로 들어갔을 때 손권의 여동생 손부인이 유선을 데리고 오나라로 돌아가려 했는데, 이때 장비가 조운과 함께 유선을 다시 데려왔다. 곧이어 유비가 유장과의 사이가 벌어지고, 방통이 전사하는 등 궁지에 빠지자, 장비는 제갈량과 함께 구원에 나서서 서로 분담하여 군현을 평정했다.
그는 강주에 도착해 유장의 부하였던 파서태수 엄안을 격파하고 생포했다. 장비는 엄안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자 이에 감탄하고 그를 용서해 후하게 대접한다. 이리하여 통과하는 곳마다 모두 승리를 거두어 성도에서 유비와 합류, 익주가 평정되자 보상금을 하사받고 파서태수로 승진한다.
적벽 전투에서 익주 평정에 걸쳐 장통이 뇌양현령에 임명되고 매일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장비가 순시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방통의 재능을 알아보고 감복한다든지, 유장을 구원하러 장로가 파견한 마초와 단기필마로 싸우는데 밤이 되도록 화톳불을 켜놓고 싸우지만 끝내 승부가 나지 않았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자 하후연과 장합을 한중에 주둔시켜 종종 파(巴)의 경계선을 침공했다. 장비는 유비의 명을 받아 탕거로 진군, 위나라의 장합과 50일이 넘도록 서로 대치했다. 장비는 정예병 1만여 명을 이끌고 다른 길을 따라 장합에게 공격을 감행해 와구에서 격파하고, 장합은 겨우 부하 10여 명 남짓 데리고 사잇길을 따라 달아났다. 219년(건안 24년) 유비가 한중을 평정하고 한중왕에 책봉되자 장비는 우장군 사절에 임명되었다.
나아가 221년(장무 원년)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장비는 거기장군으로 승진하고 사례교위를 겸임해 서향후에 봉해진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파서에서 장합과 대치했을 때, 장비가 또다시 술에 빠지게 되자 유비가 이를 걱정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것을 책략으로 간파하고 진중 위문품으로 맛 좋은 술을 보냈다. 장비는 변함없이 술을 마시고, 기다리다 지쳐 오금이 저린 장합이 야습을 감행하게 된다. 그러나 본진은 이미 모든 병사가 빠져나가 아무도 없었으며, 이 틈에 장비는 장합의 세 성채를 탈취해 대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관우가 죽임을 당한 뒤에는 매일 큰소리로 울고, 기분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고서는 취해 난폭해지는데, 부하들을 학대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유비는 이를 염려하여 언제나 장비를 훈계하였다.
유비가 오나라 토벌에 나서자 장비는 병사 1만 명을 이끌고 강주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출진에 앞서 부하 장달과 범강에게 “3일 이내에 전군의 전투 준비물을 갖추라”는 무리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두 사람이 좀더 시간을 달라고 말했는데, 장비는 벌컥 화를 내며 50대씩 곤장을 치며 기한에 못 맞추면 처형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범강과 장달은 장비에게 앙심을 품고 장비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틈에 살해하고, 그 목을 오나라에 가져다 바쳤다. 향년 55살이었다. 유비는 장비의 부관으로부터 서찰이 도달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아, 장비가 죽었구나!”하고 한탄하며 환후라는 시호를 내렸다. 유비의 예측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편집] 장비의 친족 관계
[편집] 읽을거리
오호대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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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장비|마초|황충|조운 |
삼국지의 주요 등장 인물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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