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Die im Reichsrat vertretenen Königreiche und Länder und die Länder der heiligen ungarischen Stephanskrone A birodalmi tanácsban képviselt királyságok és országok és a magyar Szent Korona országai |
|||||||||||
1914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지도.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국: Cisleithania: 1. 보헤미아, 2. 부코비나, 3. 카린티아, 4. 카르니올라, 5. 달마티아, 6. 갈리시아, 7. 퀴스텐란트, 8. 남부 오스트리아, 9. 모라비아, 10. 잘츠부르크, 11. 질레지아, 12. 스티리아, 13. 티롤, 14. 북부 오스트리아, 15. 포라를베르크; 트란스라이타니아: 16. "헝가리 왕국", 17.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18.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
|
|||||||||||
공용어 | In Cisleithenia, 독일어 and minority tongues. In Hungary, 헝가리어 |
||||||||||
---|---|---|---|---|---|---|---|---|---|---|---|
국교 | 로마 가톨릭 | ||||||||||
Largest cities (in 1910) |
Vienna (Capital) 2,031,000 Budapest 882,000 (with suburbs 935,000) Prague 224,000 (with suburbs 550,000) |
||||||||||
Head of state | Emperor of Austria, King of Hungary, King of Bohemia etc. |
||||||||||
Area | 676,615 km² (1910) | ||||||||||
Population | 51,390,223 (1910) | ||||||||||
Currency | Gulden; Krone (from 1892) |
||||||||||
National anthem | Volkshymne (People's Anthem) | ||||||||||
Existed | 1867–1918 |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어: Österreich-Ungarn 외스터라이히-웅가른[*], 헝가리어: Osztrák-Magyar Monarchia 오스트라크-머저르 모너르히어, 라틴어: Imperium Austro-Hungaricum 임페리움 오스트로-훙가리쿰, 폴란드어: Austro-Węgry 아우스트로-벵그리, 이탈리아어: Austria-Ungheria 아우스트리아-웅게리아, 체코어: Rakousko-Uhersko 라코우스코-우헤르스코, 슬로바키아어: Rakúsko-Uhorsko 라쿠스코-우호르스코, 슬로베니아어: Avstro-Ogrska 아브스트로-오그르스카, 크로아티아어: Austro-Ugarska 아우스트로-우가르스카, 세르비아어: Аустро-Угарска 아우스트로-우가르스카)는 1867년부터 1918년까지 있었던 이중 국가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또는 이중 제국(영어: Dual Monarchy)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헝가리 왕국이 제국 내에서 자치를 누리고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헝가리의 군주도 겸하였다)가 지배하는 제국의 서쪽과 북쪽 땅과의 공동 사안(외교나 정치 등)에는 비례 대표를 통해 참여했다.
이 연방의 정식 명칭은 ‘제국 회의에 대표된 왕국들과 영토들 및 신성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 왕위의 영토들 (독일어: Die im Reichsrat vertretenen Königreiche und Länder und die Länder der heiligen ungarischen Stephanskrone 디 임 라이히스라트 페르트레테넨 쾨니그라이히에 운트 랜더 운드 디 랜더 더 하일리겐 웅가리스헨 스테판스크론[*], 헝가리어: A birodalmi tanácsban képviselt királyságok és országok és a magyar szent korona országai 어 비로덜미 터나스스번 케프비셸트 키랄리사고크 에시 오르스자고프 에시 어 머져르 센트 코로너 오르사거이)’이다.
목차 |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역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옛 오스트리아 제국을 계속 지탱하기 위한 헝가리의 귀족들과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대타협(독일어: Ausgleich 아우스글라이히[*])으로 세워졌다.
19세기는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싹이 텄던 시기로 당시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정치 문제는 11개의 주 민족들간의 분쟁이 주를 이루었다.
민족들 간의 다툼이 많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그 50년 역사 동안 급속도의 경제 성장과 근대화 및 여러 자유화 개혁을 추진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8년 11월 3일, 결국 연합국에 항복하였다.
[편집] 약소국들의 독립
약소국들은 다음과 같은 국가로 독립하였다.
그 대신 헝가리는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유일하게 많은 영토를 잃어야만 하였다.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행정 구역
- 이 부분의 본문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행정 구역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헝가리령’이 아닌 부분(‘오스트리아령’ 부분)을 흔히 ‘치스레이타니아(라틴어: Cisleithania, 독일어: Cisleithanien 치스라이타니엔[*], ‘라이타 강 이편’이란 뜻)’ 부르는데 이는 그 영토 대부분이 라이타 강(독일어: Leitha, 헝가리어: Lajta 러이터 강) 서쪽에 있었기 때문이다(동북부의 갈리치아도 ‘오스트리아령’).
이 지역은 오스트리아 본토 외에도 여러 딸린 영토로 이루어졌는데 1915년 이전에는 이를 아울러서 부르는 공식 명칭이 없었고 그때부터 제국 회의에 대표된 왕국들과 영토들이란 공식 명칭을 사용했다. 제국 회의(독일어: Reichsrat 라이히스라트[*])는 치스레이타니아의 의회 역할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트란스레이타니아(라틴어: Transleithania, 독일어: Transleithanien 트란스라이타니엔[*], ‘라이타 강 저편’이란 뜻)’, 즉 ‘헝가리령’ 부분은 헝가리 외에도 딸린 영토들이 많았고 공식적으로는 ‘신성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 왕위의 영토들’이라 불렸다.
여기서 ‘성 이슈트반’은 헝가리 왕국의 첫 기독교도 왕으로 성인으로 추대받은 성 이슈트반 대왕(헝가리어: Szent István király 센트 이슈트반 키라이)을 가리킨다.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역
치스레이타니아의 ‘왕국들과 영토들’:
- 보헤미아 왕국
- 달마티아 왕국
- 갈라치아 로도메리아 왕국
- 오스트리아 제국 - 오버외스터라이히(독일어: Oberösterreich, 상 오스트리아)와 니더외스터라이히(독일어: Niederösterreich, 하 오스트리아)
- 부코비나 공국
- 카린티아 공국
- 카르니올라 공국
- 잘츠부르크 공국
- 상 실레시아와 하 실레시아 공국
- 스티리아 공국
- 모라비아 변경 백령
- 티롤 백작령 - 포어아를베르크(Vorarlberg) 영토 포함
- 오스트리아 연해변 - 고리치아 그라디스카 백작령, 트리에스테 시, 이스트리아 변경백령 포함
트란스레이타니아의 ‘영토들’:
이외에도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제국의 독자적인 부분을 형성하였으며 양쪽이 공동으로 통치하였다.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민족 관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
|||
|
체코인(보헤미아, 모라비아, 오스트리아령 실레시아에서 다수민족) 폴란드인·우크라이나인(갈라치아), 슬로베니아인(카르니올라, 카린티아, 스티리아 남부), 크로아티아인, 이탈리아인, 이스트리아의 슬로베니아인은 각각 치스레이타니아 정치에서 발언권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시에 트란스레이타니아에서의 헝가리인(머저르인) 지배는 트란실바니아와 바나트 동부의 루마니아인, 오늘날의 슬로바키아 영토의 슬로바키아인, 크로아티아 왕국과 달마티아 왕국(오늘날의 크로아티아 영토)·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보이보디나의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의 도전을 받았다.
루마니아인들과 세르비아인들은 또 새로 세워진 독립국 루마니아(1859년-1878년)와 세르비아의 동족들과의 합병을 원하였다.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종교
종교 | 전체 | 오스트리아 제국 | 헝가리 왕국 |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
---|---|---|---|---|
로마 가톨릭 | 76.6% | 90.9% | 61.8% | 22.9% |
개신교 | 8.9% | 2.1% | 19.0% | 0% |
동방정교회 | 8.7% | 2.3% | 14.3% | 43.5% |
유대교 | 4.4% | 4.7% | 4.9% | 0.6% |
이슬람교 | 1.3% | 없음 | 없음 | 32.7% |
아랍인과 보스니아인은 이슬람교를, 독일인과 헝가리인, 크로아티아인은 로마 가톨릭을, 세르비아인은 세르비아 정교회를 신봉하였다.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대
- 이 부분의 본문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입니다.
이 제국은 징병제를 채택하였다. 장성들의 계급장은 육각별이었다고 한다.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무기
이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때 산악 곡사포를 개발하였다. 산악전은 주로 이탈리아군이나 프랑스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나중에 같은 동맹국이었던 독일 제국도 이 제국이 만든 곡사포를 수입하였다고 한다.
해군, 공군, 독가스도 소유하고 있었다. 패전 후에는 해군은 약소 국가들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독가스 소유는 금지되었다.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의 문제점
이 제국은 사병과 하사관, 장교들이 훈련을 받을 때에는 군기 문란이란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혈기 왕성하였다. 그러나 막상 전쟁에만 나가면 각자 군복이 틀려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심지어는 장교와 장성들이 입는 군복도 틀렸다고 한다).
특히, 이 제국에 살고 있었던 이슬람 교도들은 아랍 전통 군복으로 전쟁에 나가기도 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사병과 하사관, 장교를 포함하여 120만 명이 전사하였으며 360만 명이 다쳤다고 전해진다. 손실률은 80에서 90%정도 되었다고 본다.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산업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문화
이 제국은 신분제가 있었는 것으로 본다. 노예 제도나 농노 제도는 없지만, 귀족은 존재하였다.
[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대한 제국과의 관계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당시의 조선은 189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서양과의 수교를 강경하게 거부하였다. 그러나 조선도 상황은 바뀌었다. 1892년 6월 23일에는 조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조·오수호통상조약(朝奧修好通商條約)을 맺으면서 양국간의 정식 외교 관계가 시작되었다. 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면서 민영익이 주오스트리아-헝가리 대사로 임명되었으나 신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1900년 6월 이진범이 참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일본 제국에 빼앗기면서 양국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당시 대한 제국은 이 제국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